목정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1998. 격조사 교체 현상에 대한 통사·미적 논의의 재검토: 조사류의 새로운 질서를 토대로 (Re-examination of the so-called case alternation in Korean: based on a new order of 'josa' system). Language Information. Volume 2. 27-81.

 

  이 글은 격조사 교체 현상에 대한 제반 논의의 다양성과 이질성이 어디서 유래하는가를 밝히려는 메타적 성격의 비교론적 시도이다. 한국어의 특성으로 거론된 이중주어구문, 이중목적어구문, 목적어상승구문, 심리동사구문, 터프구문 등에서 나타나는 격조사 교체 현상에 주목한 기존 논의들은 이론적 입장을 떠나 공히 {가}와 {를}을 격조사로 보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 논의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특정 이론에 기반한 개념을 수정·보완하는 작업보다는 논의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한국어 조사 체계의 근본 질서에 문제점이 없는가를 검토하는 작업이 선행작업으로 요구된다고 본다. 기존의 조사 체계를 해체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구조적 시각을 견지하고 조사類의 분포 양상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수행한 결과, 한국어의 모든 명사는 문법적 실현이 두 차원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으로 파악했다. 한 차원은 명사가 서술어나 다른 명사와 맺는 통사적 기능을 표시하기 위한 문법관계 표지의 실현 장소이고, 다른 차원은 격실현 명사구의 외연범위를 정해주는 限定詞(=관사)가 실현되는 위치이다. 이러한 조사류의 새로운 질서를 토대로 보면, 기존에 격조사로 분류되던 {가}와 {를}은 본질적으로 격조사가 아니라, {도} 그리고 {는}과 더불어 동일 부류, 즉 한정사 범주를 구성하는 성원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격조사 교체 현상을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영형태의 문법관계 표지 {φ1}와 영형태의 한정사 {φ2}를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기존 논의에서 흥미롭게 다루었던 ‘{에서}∽{가}’, ‘{의}∽{가}’, ‘{에게}∽{를}’, ‘{로}∽{를}’ 등의 교체 현상은 엄격한 의미에서 교체라고 할 수 없다. 이들은 동일 패러다임에 속하는 성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교체 관계는 격조사(=문법관계표지) 계열의 성원들 사이―‘{에}∽{로}’, ‘{에게}∽{와}’, ‘{의}∽{φ1}’, ‘{로}∽{φ1}’ 등등―나, 보조사(=한정사) 계열의 성원들 사이―‘{가}∽{를}’, ‘{가}∽{는}’, ‘{를}∽{도}’, ‘{가}∽{φ2}’, ‘{를}∽{φ2}’, ‘{φ2}∽{는}’ 등등―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국한되어야 한다.